손돌 설화 속 임금은 누구? 고종·공민왕·인조, 문헌마다 다른 손돌목 이야기
소설 무렵 찬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바람의 주인공인 뱃사공 손돌을 처형한 임금이 누구였는지 물으면 답이 엇갈립니다. 어떤 책은 고려 고종, 어떤 책은 고려 공민왕, 또 어떤 이야기는 조선 인조라고 전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손돌 설화 속 임금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인천광역시 설화 자료를 비교해 정리했습니다. 전설의 두 가지 줄거리, 문헌별로 다른 임금, 손돌목과 무덤의 위치까지 차례로 살펴봅니다. 올해 손돌추위 날짜(2026년 11월 28일)가 궁금하다면 우수한 정보의 손돌추위 2026 날짜 글을 참고하세요.
목차
1. 손돌 설화는 어떤 이야기인가
2. 손돌목은 어디에 있는 물길일까
3. 이야기 하나: 바람을 기다리자던 손돌
4. 이야기 둘: 바가지를 따라가라
5. 임금은 누구? 문헌마다 다른 세 가지 설
6. 인조 버전이 유독 생생한 이유
7. 손돌의 무덤과 덕포진
8. 바람의 신이 된 뱃사공
9. 자주 묻는 질문
10. 함께 확인하면 좋은 글
- 손돌 설화 = 음력 10월 20일 찬 바람(손돌바람)의 유래이자 김포 손돌목의 지명 유래담
- 임금은 문헌마다 다름: 『김포군지』 고려 고종, 『여지도서』 고려 공민왕, 『강도의 민담과 전설』 조선 인조
- 줄거리도 두 갈래: “바람이 잘 때까지 기다리자” 형 / “바가지를 따라가라” 형
- 손돌의 무덤은 강화 광성보 맞은편 김포 덕포진(대곶면 신안리)에 있다고 전함
1. 손돌 설화는 어떤 이야기인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손돌 설화를 “남성 풍신(風神)인 손돌에 관한 설화”로 정의합니다. 음력 10월 20일에 부는 차가운 바람신인 손돌신의 신화이면서, 경기도 김포시와 강화군 사이에 있는 여울 손돌목의 이름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설명하는 지명 유래담이기도 합니다.
같은 이야기를 “손돌바람 설화”, “손돌목 전설”, “손돌 전설”이라고도 부릅니다. 핵심 구조는 늘 같습니다. 난리를 피해 강화도로 건너가던 임금이 뱃사공을 의심해 죽이고, 뒤늦게 잘못을 깨닫는다는 이야기입니다.
2. 손돌목은 어디에 있는 물길일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손돌목” 항목에 따르면 손돌목은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지역에 있는 목입니다. 이 지역이 바다 쪽으로 튀어나와 있고, 맞은편 강화도 광성보가 있는 곳도 바다로 돌출해 있어 두 땅 사이가 좁은 여울을 이룹니다.
그래서 밀물 때 이곳을 지나는 물살이 급류가 되어 배가 건너기 어렵습니다. 전설 속 임금이 “왜 이렇게 위험한 물길로 가느냐”며 손돌을 의심하게 된 배경에는 이런 실제 지형이 있습니다.
3. 이야기 하나: 바람을 기다리자던 손돌
“손돌목” 항목은 전설을 두 가지로 소개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손돌은 서두르는 임금에게 “아직 바람이 자지 않았으니 쉬었다 건너자”고 권합니다. 임금은 이를 모반으로 여겨 그를 처형하는데, 그러자 광풍이 불어 바다를 건널 수 없게 됩니다.
임금이 크게 후회하며 손돌이 탄 말의 목을 베어 제사를 지내자 그제야 바람이 잔잔해져 건널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버전에서는 손돌의 “기다리자”는 조언이 옳았음을 바람 자체가 증명하는 구조입니다.
4. 이야기 둘: 바가지를 따라가라
두 번째 이야기가 더 널리 알려진 줄거리입니다. 손돌이 배를 급류 쪽으로 몰자 위험을 느낀 임금이 그를 의심해 죽이려 합니다. 손돌은 죽기 전 “바다에 바가지를 띄워 그것이 가는 대로 배를 몰면 안전할 것”이라고 남깁니다.
손돌을 죽인 뒤 그 말대로 했더니 배가 무사히 건넜고, 임금은 크게 뉘우쳐 무덤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 주었다고 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손돌 설화” 항목에는 바가지 대신 “박을 물에 띄우고 따라가라”는 표현으로 실려 있습니다.
첫째 이야기: 손돌의 조언 = “바람이 잘 때까지 기다리자” → 처형 후 광풍 → 말 목을 베어 제사
둘째 이야기: 손돌의 조언 = “바가지(박)를 따라가라” → 처형 후 무사히 도착 → 무덤과 제사
5. 임금은 누구? 문헌마다 다른 세 가지 설
인천광역시 “인천설화” 자료는 이 이야기의 임금에 대해 문헌마다 서로 다른 설이 있다고 정리합니다.
| 문헌 | 전설 속 임금 | 시대 배경 |
|---|---|---|
| 『김포군지』 | 고려 고종 | 몽골 침입기 강화 천도 |
| 『여지도서』 | 고려 공민왕 | 고려 말 |
| 『강도(江都)의 민담과 전설』 | 조선 인조 | 1627년 후금 침입(정묘호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두 항목은 모두 “고려 때 몽고(몽골)의 난을 피해” 강화로 가던 왕으로 서술해, 고려 고종 설과 같은 흐름입니다. 결국 “정답 하나”가 있다기보다, 강화도로 피난한 임금이 여럿이었던 역사 속에서 지역마다 가장 와닿는 임금을 이야기에 붙여 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6. 인조 버전이 유독 생생한 이유
인천광역시 설화 자료의 인조 버전은 시대 배경이 구체적입니다. 인조 5년(1627) 후금(뒷날의 청)이 침략해 오자 인조가 강화도로 피난하고, 구경 나온 사람들이 손돌 사공을 추천합니다. 배가 물살 한가운데로 들어서자 인조는 몇 해 전 겪은 이괄의 난을 떠올리며 손돌을 의심해 목을 치라고 명합니다.
반란을 겪은 임금의 불안이 의심으로 이어졌다는 설정 덕분에 이야기에 설득력이 더해집니다. 손돌이 바가지를 띄우며 그 흐름을 따라가라고 부탁하고, 무사히 건넌 뒤 임금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후하게 장사 지내라고 했다는 결말은 다른 버전과 같습니다.
7. 손돌의 무덤과 덕포진
인천광역시 자료에 따르면 지금 강화도 광성보에서 마주 보이는 김포 덕포진(대곶면 신안리)에 손돌의 무덤이 있다고 전합니다. 사람들은 이 물길을 손돌의 목을 벤 곳이라 하여 손돌목이라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같은 자료는 손돌이 죽은 음력 10월 20일에 부는 큰바람을 “손돌의 한숨”, “손돌바람”, “손돌추위”라고 부른다고 소개합니다. 강화 쪽 광성보와 김포 쪽 덕포진이 좁은 물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지형이 전설의 무대 그대로인 셈입니다. 방문을 계획한다면 관람 시간 등은 현지 공식 안내를 확인하세요.
8. 바람의 신이 된 뱃사공
이 설화가 특별한 점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해마다 같은 날 “바람”으로 돌아온다는 데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손돌을 남성 풍신, 곧 바람의 신으로 설명하며, 이 날이면 어부들은 바다에 나가는 것을 삼가고 사람들은 겨울옷을 마련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전합니다.
의심과 후회의 이야기가 계절의 변화(첫 강추위)와 뱃사람들의 안전 수칙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안성의 “손돌뱅이 죽은 날”, 영동의 “손사공 죽은 날”처럼 지역마다 이름이 달라진 사례는 손돌추위 2026 날짜 글에 정리돼 있습니다.
9. 자주 묻는 질문
Q. 손돌은 실존 인물인가요?
확인된 역사 기록의 인물이라기보다 설화 속 인물입니다. 문헌마다 임금과 시대가 다르게 전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Q. 손돌바람은 소설과 같은 날인가요?
아닙니다. 손돌바람은 음력 10월 20일 무렵이고, 소설은 양력 11월 22일 전후의 절기입니다. 2026년 소설은 11월 22일, 음력 10월 20일은 11월 28일입니다.
Q. 손돌목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김포 대곶면 신안리 쪽과 강화도 광성보 사이의 좁은 물길입니다.
10. 함께 확인하면 좋은 글
소설 절기의 날짜·속담 총정리는 인포스파이어 소설 2026 날짜·시간 총정리, 올해 손돌추위 양력 날짜는 손돌추위 2026 날짜, 음력 10월 20일은 양력 11월 28일(토)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인포스토리의 입동과 소설, 이름만 알던 겨울 절기가 생활에 남기는 것들과 11월 22일 김치의 날 유래도 함께 읽어 보세요.
참고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손돌 설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손돌목, 인천광역시 인천설화 – 손돌의 추위
